본문 바로가기

기획취재

공유 인쇄 목록

[금녀의 벽 기획 10편] '처음 하늘길을 걷다' 여성 조종사의 도전

평생

황대훈 기자 | 2017. 09. 29

[EBS 집중취재] 

EBS 연중기획, '여기서 일한다, 여성이 일한다'. 오늘 마지막 순서인데요. '금녀의 벽'으로 비행기 조종사를 꼽을 만큼 여성 기장이 아예 없는 민항사도 여전히 많은데요. 대한민국 1세대 여성 조종사이자 22년차 베테랑 파일럿인 이혜정 씨를 황대훈 기자가 만나봤습니다.  

 

[리포트]

     

제주도에서 돌아온 비행기가 계류장으로 들어옵니다. 

     

이 비행기의 조종사는, 대한민국 1세대 여성 조종사이자 22년차 베테랑 기장인 이혜정 씹니다. 

     

비행기를 몰기 전까지 해외여행 한 번 못 해봤었다는 그녀는, 대학 졸업 후 아시아나 승무원으로 일하던 시절 조종석에서 바라본 하늘에 반해 조종사를 꿈꾸게 됐습니다. 

     

인터뷰: 이혜정 기장 / 진에어

"유성이 떨어지거나 아니면 바깥에 탁 트인 하늘, 그리고 갑자기 밤이었는데 달이 돛단배 같이 삭 올라와요. 아 나도 하늘 보고 싶고 밑에도 보고 싶고 그런 생각했었던 것 같아요."

     

국내에 여성 조종사가 단 한 명도 없었던 지난 1996년, 스물여덟 살이었던 혜정 씨는 인생의 새로운 도전을 결심했습니다. 

     

인터뷰: 이혜정 기장 / 진에어

"당연히 남자만 했었기 때문에 여자는 안 돼, 이런 문구가 없었어요. 그래서 그냥 한 번 원서를 냈었는데 회사에서도 자꾸 여자들이 원서를 내고 하니까 한 번 뽑아 보자고 마음을 먹게 된 것 같아요."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조종사 5명 가운데 한 명이자, 최초의 승무원 출신 조종사가 된 그녀는, 조종사 일에 첫 발을 디딘 여성이란 이유로 편견 어린 시선을 받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혜정 씨가 하늘에서 보낸 11600시간, 날짜로 따지면 500일에 달하는 이 시간 동안, 여성 조종사에 대한 우려의 시선은 믿음으로 바뀌어갔습니다.

     

인터뷰: 이혜정 기장 / 진에어

"그런 시선들이 있어요. '쟤네는 홍보로 뽑았다'는 그런 게.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 아 저 사람들이 어떤 능력을 내고 어떻게 일을 해내고 이런 걸 많이 아시기 때문에 그런 많은 편견들은 없어진 것 같아요."

     

잦은 출장으로 집을 비우는 일이 많았던 탓에 육아를 도맡아 준 시부모님과, 바쁜 엄마를 이해해 준 두 아이들에게는 늘 고마운 심정입니다. 

     

지난해부터 몸이 더 고된 장거리 노선으로 옮긴 것도, 가족과 함께 보낼 시간을 더 많이 갖고 싶어섭니다.

     

인터뷰: 이혜정 기장 / 진에어

"학교 행사 같은 데 제가 못 가면 다른 애들은 엄마가 오는데 저희는 할머니나 할아버지한테 부탁드리곤 하거든요. 으레 엄마 아빠는 못 온다고 생각을 하니까 그건 많이 익숙해진 것 같아요."

     

밤을 새는 일이 잦고 불규칙한 식사로 건강이 늘 걱정인 조종사 일이지만, 무사히 비행을 마치고 승객을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모셨을 때 느끼는 보람은 그녀를 다시 날아오르게 합니다.

     

여성 조종사는 남성과 경쟁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사회의 편견 어린 시선과 싸우는 것이라는 혜정 씨. 

     

여성이란 점은 조종사가 되는 데 아무런 장애물이 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인터뷰: 이혜정 기장 / 진에어

"비행이란 건 힘으로 하는 게 아니거든요. 힘으로 하면 아무리 힘센 사람도 그 큰 비행기를 몰 수가 없어요. 힘으로 하는 게 아니고 결국 비행을 하면 섬세함과 정확한 판단력 이런 것들이 필요하거든요. 그렇다면 여자들은 거기에 대해서 뒤처지거나 그러진 않아요."

     

승객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며, 함께 일하는 승무원과 동료 조종사들을 이해하고 격려해주는 그녀의 모습은, 자연스럽게 후배들의 롤모델이 됐습니다. 

     

인터뷰: 손승일 부기장 / 진에어

"존경하는 마음이 항상 들고요. 후배들한테도 격려와 따뜻한 말씀 주시는데도 그런 가운데서 안전을 최우선하는 게 쉽지는 않을 텐데 그런 모습들이 되게 프로답다…"

     

비행을 빼고서는 본인의 인생을 말할 수 없다는 혜정 씨, 여건만 허락한다면 백발이 성성한 할머니 조종사로 하늘에서 여생을 보내고 싶다는 바람입니다.

     

인터뷰: 이혜정 기장 / 진에어

"80세까지 시뮬레이터 교관을 하고 있지 않을까. 머리도 희끗희끗하고 눈에 주름도 있고 할머니 기장이 그때까지 비행을 하고 있다면 기분 좋은 일 아닐까 생각하고 있어요."

     

EBS 뉴스 황대훈입니다.    

황대훈 기자 hwangd@ebs.co.kr / EBS 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