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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밖의 역사> 간디의 '사티아그라하'

책 밖의 역사

전하연 작가 | 2016. 09. 27

[EBS 저녁뉴스]

[EBS 뉴스G]

지난 9월 21일은 유엔이 정한 ‘세계 평화의 날’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는 10월 2일은 마하트마 간디의 비폭력 저항운동을

기리는 ‘국제 비폭력의 날’입니다. 

그래서 오늘  ‘책 밖의 역사’에서는 간디의 삶을 통해 

비폭력과 평화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리포트]


1930년 3월 12일 

간디는 사티아그라하 운동, 

즉 비폭력 저항운동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영국은 

인도 사람들에게 바다에서 소금을 채취하거나 

판매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었습니다.


대신 영국에서 생산된 소금을 

비싼 값에 수입해서 먹도록 강요했죠. 


영국의 소금법은 인도 사람들, 

특히 가난한 사람들에게 큰 고통을 주었습니다. 


이에 간디는 

불공정하고 부당한 법에 맞서는 행진을 시작했습니다. 

  

아마다바드에서 시작해서 

단디의 바다에 이르는 이 행진은 

380km에 달했지만

간디는 한 발자국씩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처음 그의 뒤를 따르던 70여 명의 사람들은 

바다에 도착했을 때 수만 명에 달했죠. 


사람들은 간디를 ‘마하트마’라고 불렀는데요,

‘마하트마’는 ‘위대한 영혼’이라는 뜻입니다. 


바다에 도착한 간디는 

진흙에서 한 줌의 소금을 들어 올렸습니다. 


그리고 그의 평화로운 저항 운동은 

인도 전역으로 퍼져 나갔죠.


영국 정부는 

간디와 6만여 명이 넘는 사람들을 체포했지만 

그의 사티아그라하 운동은 계속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행진은 

인도의 독립 운동에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마하트마 간디는 1869년 10월 2일 

영국령이었던 인도의 항구 도시 

포르반다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수줍음이 많은 소년이었다고 하는데요,

겁이 많아서 잠을 잘 때에도 

불을 꼭 켜둔 채 잤다고 합니다. 

 

18살이 되던 해에 간디는 

법을 공부하기 위해 영국 런던에 가게 됩니다. 

  

이후 변호사가 된 그는 

남아프리카에서 근무하게 되는데요, 

하루는 기차 1등석에서 표가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백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쫓겨나게 됩니다. 


이 일은 그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게 됩니다.

부끄러움이 많았던 그였지만 

인도인들의 인권을 위해 투쟁하기 시작했죠. 


그리고 비폭력 저항운동인 

사티아그라하 운동을 시작합니다.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고 

간디는 인도로 돌아왔습니다.

인도는 여전히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고 있었죠. 

 

간디는 생을 마칠 때까지 

기도와 단식, 명상을 하는 금욕적인 삶을 살며

인도의 독립과 인도 사람들의 인권을 위해 헌신했습니다.

  

그는 직접 물레를 돌리며 

옷감을 짜서 입는 운동을 전개했고 

영국의 상품 불매 운동을 진행했습니다. 


또한 소금 행진을 비롯한 

비폭력 저항 운동을 계속했죠. 


1947년 8월 15일 인도는 영국에서 독립했지만 

간디가 열망했던 종교 간의 화합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슬람교도와 힌두교도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 노력했지만 

1948년 1월 30일 

힌두교 급진주의자에게 피살당했습니다. 


하지만 간디의 비폭력 평화 정신은

미국의 마틴 루터 킹 목사와 

전 세계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고 

지금까지 인류의 유산으로 남아있습니다. 


"진실(Satya)은 사랑을 의미하고, 

견고함(Agraha)은 힘을 뜻합니다. 

저는 그래서 인도의 운동을 

‘사티아그라하(Satyagraha)’라 부르게 됐습니다. 

힘은 진리와 사랑 그리고 비폭력에서 나옵니다.”

 - 마하트마 간디


전하연 작가 ebsnews@ebs.co.kr / EBS 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