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뉴스인

공유 인쇄 목록

<책 밖의 역사> 내 슬픈 전설의 91페이지

문화, 뉴스人

전하연 작가 | 2015. 12. 14

[EBS 뉴스G]

지난 10월 한국 미술계의 거장, 천경자 화백의 타계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오늘 ‘책 밖의 역사’에서는 국 화단에 큰 자취를 남긴 고인의 작품세계를 전해 드립니다. 

 

 

[리포트]

 

꽃을 든 여인이 정면을 응시합니다. 

  

머리 위에는 뱀들이 꿈틀거리고 있습니다. 

  

천경자 화백이 쉰 넷에 

스물두 살 때의 자신을 회고하며 그린 그림입니다. 

  

‘내 슬픈 전설’이란 말이 왠지 좋았다는 화백은

머리에 꽃이나 뱀을 얹어 한을 표현했습니다. 

  

천 화백의 그림 속에는 

늘 그녀 자신이 함께 담겨 있었습니다.

  

강렬하고 화려한 색채 속 여인들은 

몽환적이고 애틋한 눈빛을 지니고 있는데요,

  

천 화백은 동공을 채우지 않고 비워두었습니다. 

  

이 그림들은 수채물감을 

화선지에 켜켜이 쌓아 완성된 채색화입니다. 

  

화선지는 물감을 쉽게 흡수하기 때문에 

색칠 후 말려 덧칠하는 작업을 수없이 반복해야 

하나의 색상이 완성됩니다. 

  

천경자 화백은 전통적인 동양화 기법에서 벗어나 

여인의 한과 꿈, 고독을 환상적인 색채로 표현해 냈고

‘천경자풍의 채색화’란 

독창적인 예술 세계를 만들었습니다.

  

천 화백은 1924년 전라남도 고흥군에서 태어나 

유년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일본 유학시절 ‘조부’와 ‘노부’가 입선하면서

화가로서 역량을 인정받게 되었죠.

  

‘조부’와 ‘노부’는 손녀를 위해 모델이 되어준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의 초상화입니다. 

  

하지만 이후 천 화백은 결혼의 실패와 여동생의 죽음으로 

절망적인 시간을 보내게 되는데요,

  

그러던 중 사람들이 징그럽다고 고개 돌리는 뱀이 

그녀의 눈에 들어옵니다. 

  

그녀에게 뱀은 생명수처럼 느껴졌습니다.

  

천 화백은 삶의 역경 속에서 오직 살기 위해 뱀을 그렸고

이 때 완성된 작품이 바로 ‘생태’입니다. 

  

총 서른다섯 마리의 뱀 무리가 뒤엉킨 이 그림은 

당시 화단에 큰 충격을 던졌습니다. 

  

이후 뱀과 꽃, 여인을 소재로 한 천 화백의 채색화는

한국 미술계에 혁명과도 같았죠.

  

천 화백은 일흔이 넘어서도 여인들을 화폭에 담았지만 

노년에 위작 논란으로 시련을 겪으며 한국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그림들이 흩어지지 않고 

시민에게 영원히 남겨지길 바란다는 말과 함께 

대표 작품 93점을 서울시립미술관에 모두 기증했습니다.

  

삶의 무게와 고통, 한과 고독을 

예술로 승화시킨 천경자 화백

  

그녀의 슬픈 전설은 

91페이지를 마지막으로 그 여정을 마쳤습니다. 

  

“천경자는 누구인가. 그는 그것밖에는 어떤 것도 될 

수 없는 천형(天形)의 예술가다”

-고은

  

“꿈은 화폭에 있고, 시름은 담배에 있고, 용기 있는

자유주의자, 정직한 생애. 그러나 그는 좀 고약한 

예술가다”

-박경리 

  

“나의 삶은 그림과 함께 인생의 고달픈 길동무처럼 멀

리 이어질 것이다.”

-천경자

 

 

 

 

 

전하연 작가 ebsnews@ebs.co.kr / EBS NEWS